[칼럼] 죽음의 원인을 누가 밝히는가 — 법의인정의 제도, 이제는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국의 사망 원인 규명은 아직도 위촉과 호출에 의존한다. 법의인력 부족, 낮은 부검률, 사인 불명 문제를 미국·일본 등과 비교하고, 법의관 자격 법정화와 사망 정보 전산 연계 등 단계별 개선 방향을 제안한다.
“사망 원인 규명은 한 사람의 마지막 기록이자 사회 안전망의 출발점이다” 필자는 얼마 전 대구에서 병리 전문의이자 법의학 분야에서 오래 활동해 온 한 법의인정의를 만났다. 그가 들려준 현장의 문제의식은 단순했다. 누군가의 죽음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사람이 일일이 전문가를 찾아 불러야 움직이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가 시스템 안에서 사망 정보가 자동으로 흐르고,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한 사건만 신속히 걸러져 그에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호출과 위촉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말이 과장일까. 공개된 자료를 하나씩 확인해 보니 상당 부분은 사실에 가까웠다. 그리고 문제의 뿌리는 개인의 헌신으로 메우기엔 너무 깊은 곳, 곧 제도의 설계에 있었다.
용어 정리
- 사망진단서: 병원에서 치료받던 환자가 숨졌을 때 주치의가 작성하는 문서.
- 시체검안서: 진료 중이 아니었거나 병원 밖에서 숨진 경우 등 의사가 시신을 살펴본 뒤 작성하는 문서.
- 검시·검안: 변사(사인이 불분명하거나 범죄 연관이 의심되는 사망) 때 수사기관과 의사가 시신과 현장을 살피는 절차.
- 부검: 시신을 해부해 사인을 밝히는 절차. 범죄 관련성이 있으면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 법의관: 검시와 부검을 맡는 의사. 법으로 정해진 자격 기준은 아직 없다.
- 법의인정의: 법의학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의사를 가리키는 현장 표현. 대한법의학회는 2009년 학회 차원의 인증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법이 정한 자격은 아니다.
사망이 ‘인증’되기까지, 두 갈래의 길
우리나라에서 죽음이 공식 기록이 되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첫 번째는 병원 안에서 치료받다 숨지는 경우다. 주치의가 사망진단서를 쓰고, 유족은 이를 가지고 사망신고를 한다. 사망신고는 한 달 안에 해야 한다. 이 길은 비교적 단순하다.
두 번째가 문제다. 집이나 길에서 숨졌거나, 진료 중이 아니었거나, 사인이 불분명하거나, 사고·자살·범죄가 의심되는 경우다. 이때는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검시를 하고, 의사를 불러 검안을 하게 하며, 그 결과 시체검안서가 나온다. 범죄 혐의가 짙으면 검사의 지휘 아래 부검 영장이 청구되고, 부검은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나 일부 대학에서 이뤄진다. 업무가 검사·경찰·의사·판사에게 나뉘어 있어서, 미국과 유럽처럼 한 기관이 검시 전 과정을 총괄하는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법의학계의 증언은 이 두 번째 길의 불편함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대한법의학회장을 지낸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는 2023년 한 인터뷰에서 병원 밖 사망의 절차가 복잡하다고 짚었다. 유족이 병원을 찾아가 사망진단서를 받아야 하고, 사법 부검을 하려면 경찰 의뢰와 검사의 영장 청구, 법원 발부를 차례로 거쳐야 하니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는 서류상 존재하는 행정검시(범죄 혐의가 없는 사망을 점검하는 절차)가 사실상 제 기능을 못 한다고도 했다.
누구나 검안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
이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검안을 하는 사람의 자격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2023년 3월 국회 토론회에서 김장한 회장은 “현재 의사(치과의사·한의사 포함) 자격만 있으면 법의관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검안 의사는 독극물 검사, 방사선 검사, 의무기록 검토도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눈으로 본 소견에 의존해 사인을 적는다.
법의학을 수련한 병리 전문의가 아니어도 검안서를 쓸 수 있고, 반대로 전문성을 갖춘 법의인정의라도 제도상 반드시 참여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검시를 전담 공무원이 맡는 것이 아니라 위촉받은 의사가 겸임하는 ‘겸임검시제(위촉제)’를 쓰고 있다. 결국 사건이 생겨야 의사를 부르고, 부르면 와서 보는 방식이다. 현장 전문가가 말한 “일일이 불러서 처리한다”는 표현은 이 구조를 압축한 것이다.
여기에 개인정보 문제까지 얽힌다. 2022년 일요시사 보도에 따르면 국내 법의관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사망자의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쿡카운티(시카고)의 검시관은 의무기록 제출과 추가 경찰 수사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 사인을 판단해야 할 사람에게 판단의 재료가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숫자로 보는 문제점
1. 사람이 없다
법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은 얼마나 될까. 숫자는 집계 기준에 따라 다르다. 201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정식 법의학자가 23명으로 제시됐고, 2022년 일요시사는 2020년 기준 법의 병리 전문의를 63명으로 집계했다. 이 중 국과수 소속이 30명, 사법부검을 주로 담당하는 사람은 32명이다. 대한법의학회장은 2023년 “국내 법의학자는 50여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의와 시점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수십 명 규모라는 점은 같다.
국과수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결산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국과수 법의관 결원율은 2020년 38%, 2021년 36%, 2022년 35%, 2023년 33%, 2024년 33%로 5년째 3분의 1 안팎이 비어 있다(시사저널 2025년 9월 보도).
수요는 늘고 있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국과수 본원의 감정 의뢰 건수는 2015년 38만 6,918건에서 2022년 70만 856건으로 81.1% 늘었고, 평균 감정 처리 기간은 9.1일에서 13.4일로 길어졌다. 일선 경찰은 예전엔 한 달이던 결과 통보가 이제 두 달 넘게 걸린다고 말한다. 법의관 1인이 맡는 부담도 크다. 2020년 부검이 8,813건이었으니 법의 병리 전문의 1인당 연 275건 안팎이다. 이호 전북대 교수는 1인당 연 200건 정도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검시관 인증기구가 권고하는 법의병리 전문의 1인당 연 250건 상한을 웃도는 수준이다.
2.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
병리 전문의 수련 지원율은 2016년 66.1%에서 2019년 35%로 떨어졌다. 병리 전문의가 되려면 의대 졸업 뒤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여기에 법의학 경험까지 쌓으면 12~15년이 걸린다. 그런데 보상은 이 긴 수련에 걸맞지 않다. 국과수 법의관은 병리 전문의임에도 5급 전문관으로 채용되어 초임 연봉이 7,000만~8,000만 원 수준(야간수당 포함)이고, 7~8년 차도 1억 원 안팎이다. 부검 뒤 감정서를 쓰는 노동에는 별도 보수가 없다. 퇴직해 개업해도 부검은 건당 약 50만 원 수준이다. 유성호 서울대 교수는 “돈도 못 벌고 사명감만 강조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을 지키던 사람들도 떠난다. 김장한 회장은 2003년부터 20년 넘게 해 온 부검을 내려놓았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서 작성 시간이 크게 늘었고, 수입은커녕 오히려 비용이 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개인 사정이 아니라 후배가 없는 분야의 구조적 문제로 설명하며, 당장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한국에서 법의학이 말라 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시방편으로 정년퇴직한 고령 법의학자를 촉탁으로 불러 부검을 맡기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이 쓰이고 있다.
3. 부검이 적고, 한곳에 쏠려 있다
2019년 대한의학회지(JKM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부검률은 2001년 2.16%에서 2015년 2.60%로 거의 제자리였다. 병원 안 사망에서 이뤄지는 임상부검은 같은 기간 420건에서 88건으로 줄었고, 그나마 2곳이 84.1%를 차지했다. 사법(법적) 부검은 4,850건에서 7,092건으로 늘었지만 이상사(비정상적 죽음) 대비 비율은 10.45%에 그쳤다. 사법 부검의 95.7%는 국과수가 맡는다. 연구진은 한국의 부검률이 미국·일본·유럽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참고로 같은 논문이 인용한 다른 나라 수치는 미국의 전체 부검률이 1972년 19.3%에서 2007년 8.5%로, 영국이 1979년 42.7%에서 2001년 15.3%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임상부검이 줄어드는 동안 사법부검이 13.6%에서 23.8%로 늘었다. 일본의 임상부검은 1974년 2만 3,086건에서 2016년 1만 1,473건으로 줄었다. 각국이 집계하는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에는 한계가 있고, 이 수치들도 모두 십수 년 전 자료다. 그러나 병원 안팎을 가리지 않고 부검이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는 흐름, 그리고 한국은 출발선이 낮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4. 사인 불명이 많다
2014년 세계일보는 2012년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를 WHO 기준으로 다시 분석했다. 사망자 26만 7,221명 가운데 2만 8,838명(10.8%)의 사인이 불명확했다. 인구 10만 명당 사인불명확 사망자는 한국이 85.8명(2012년)이었고, 일본 30.3명, 독일 23.3명, 영국 14명, 미국 12.5명(이상 2010년)과 큰 차이가 났다. WHO가 권고하는 불명확 사인 비율은 65세 미만 5%, 65세 이상 10% 이하인데, 한국은 각각 5.7%와 10.8%로 둘 다 넘었다.
이 분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역 편차였다. 불명확 사인 비율이 가장 낮았던 곳은 부산(6.4%), 울산(7.2%), 세종(7.7%)이다. 기사는 부산과 울산에서 법의학자가 운영하는 민간 법의원이 검안서를 꼼꼼히 쓰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전문가가 있으면 숫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배우자가 없거나 학력이 낮거나 1인 가구인 사람일수록 원인불명 사망 비율이 높았다. 사인 규명은 건강 불평등과도 닿아 있다.
이 통계는 십수 년 전 자료여서 현재 수치는 통계청 원자료로 갱신해야 한다. 다만 2025년 사망자가 36만 2,968명으로 전년보다 1.2% 늘었고, 고령화로 앞으로 사망자는 훨씬 많아질 것이다. 2023년 토론회에서는 30년 뒤 연간 사망자가 70만~100만 명에 이를 수 있고, 검시 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사인 불명 사망이 전체의 3분의 1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법안은 번번이 좌초했다
제도를 고치자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3년 3월 토론회 보도에 따르면 법의관 관련 입법은 2005년부터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이유로는 국과수 법의관과 대학 법의학 교수, 수사기관 사이의 이견이 꼽혔다. 검시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 곧 사법 통제 관점에서 검사가 맡을 것인가 의료 전문가가 맡을 것인가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2023년 7월 이해식 의원 등 11명이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의관 자격을 병리 전문의 또는 법의학·해부학 전공자로 한정하고, 법의관이 변사체를 검안한 뒤 사인과 부검 필요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도록 했다. 검시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매장·화장을 못 하게 하고, 법의관의 직무 독립성을 보장하며, 직무를 방해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양성기관 지정과 국가의 교육 경비 지원 근거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2024년 5월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 사이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도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무부 검사는 “검시 주체는 사법 통제 관점에서 정해져야 하며, 인력 문제가 해결되면 현행법으로도 초동수사 단계에 법의관이 참여할 수 있다”고 했고, 복지부는 법의관 양성 필요성에 공감하며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기관 간 이해가 부딪히는 부분을 피해 우선 양성 중심으로 입법하자고 제안했다. 방향에 대한 공감대는 있는데도 구체적인 틀을 만드는 데 번번이 실패해 온 것이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 전문가 중심이지만 지역별 편차 커
미국에는 전국 단일 체계가 없다. 주마다 법이 다르며, 크게 법의관(medical examiner, ME) 제도와 검시관(coroner) 제도, 그리고 둘이 섞인 혼합형이 있다. ME는 임명직으로 대개 의사이며 법의병리 전문의인 경우가 많다. 반면 coroner는 선출직이 많고 의학 훈련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의사가 coroner를 맡기도 한다. 법의병리가 전문과목으로 인정된 것은 1959년이다.
대표적 사례가 시카고가 속한 쿡카운티 법의관실이다. 인구 약 520만 명을 관할하며, 법의관은 약 15명(정원 16~17명)이다. 일요시사의 단순 계산으로는 인구 100만 명당 약 3명으로 한국의 1.16명보다 3배가량 많다. 2019년 카운티 사망자 4만 1,317명 중 1만 3,758건이 법의관실에 신고됐고, 이 가운데 6,274건이 법의관의 관할로 조사됐다. 사고 2,564건, 자연사 2,339건, 살인 676건, 자살 479건이었다. 법의관은 사인과 사망의 종류를 스스로 기록하고, 가족은 이 판단에 따른 사망증명서를 받는다. 의무기록 제출 요구에도 법적 강제력이 있다.
미국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모범답안은 아니다. 2003년 기준 법의병리 전문의 자격을 딴 사람은 1959년 이후 누적 약 1,150명에 불과했고, 수련 프로그램 41곳이 1년에 받는 전공의는 70명 정도였다. 재원 부족과 과중한 업무량, 지역별 질 격차가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coroner 제도는 정치적 영향과 의학적 자격 미비 때문에 사망이 잘못 분류되거나 증거가 유실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지역이 coroner에서 ME 제도로 옮겨 갔다. 시사점은 분명하다. 선진국에서도 전문인력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붙잡을지는 항상 어려운 문제이고, 그래서 제도와 재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경찰 중심 검시와 뒤늦은 입법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먼저 겪었다. 경찰이 시신을 보는 외표 검사 중심으로 검시가 이뤄져 왔고, 부검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전후 미국의 영향으로 ME 제도가 도입됐지만 일부 지역에만 정착했다. 이후 2012년 사인규명 관련 두 법이 제정되고 2019년 사인규명추진기본법이 통과되어 정부가 기본계획을 세우는 틀이 마련됐다. 다만 연구자들은 이 법이 실행되려면 추가 논의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동 사망 검증에서는 지역별 편차가 드러났다. 지바현의 20세 미만 사망 연구에서 부검률은 13.5%였고, 부검한 69건 중 26건에서 사망진단서의 사인이 부검 뒤 판단된 사인과 달랐다. 사망진단서만으로는 놓치는 것이 많다는 방증이다.
한국과 해외, 한눈에
| 구분 | 한국 | 미국 | 일본 |
|---|---|---|---|
| 사망 조사 주체 | 검사·경찰·의사·판사 분절, 위촉 의사 겸임 | 지역별 ME 또는 coroner (전국 단일 체계 없음) | 경찰 중심, 감찰의 제도는 일부 지역 |
| 검안·검시 자격 | 법으로 정한 기준 없음 (의사·치과의사·한의사 가능) | ME는 대개 의사·법의병리 전문, coroner는 지역별 상이 | 경찰 중심, 의사 협력 |
| 의무기록 접근 | 개인정보 문제로 제한적 | 쿡카운티는 법적 강제력 있음 | 제도상 제한 있음 |
| 법적 기반 | 법의관 자격법 폐기(2024) | 주법 | 2012년 법, 2019년 기본법 |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문제는 분명하고 해법도 이미 여러 사람이 제시했다. 필자가 만난 현장 전문가의 문제의식과 확인한 자료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단기·중기·장기로 나눠 추진할 수 있다.
단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첫째, 검안의 최소 요건을 높인다. 법으로 법의관 자격을 정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입법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검안 교육과 인증 제도를 먼저 운영하고, 검안을 위촉받으려면 이수하도록 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김장한 회장이 제안한 검안 교육·자격 제도 도입과 같은 방향이다.
둘째, 촉탁 법의관의 보상을 현실화한다. 감정서 작성에 별도 보수가 없고, 국과수가 촉탁의에게 시설과 재료를 제공할 법적 근거도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고치는 것만으로도 은퇴한 법의학자와 개업의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셋째, 검안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허용한다. 김장한 회장은 “피만 뽑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의무기록 열람, 혈액 채취, CT 촬영 등이 허용되면 검안의 정확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는 시설 직원이 서류를 정리하고 혈액을 밤새 독성검사에 보내면 법의관이 다음 날 아침 더 빠르게 사망을 확인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이런 기능을 갖춘 공공 시체안치·검안 시설(공시소)을 서울에서 시범 운영하고 인력이 늘어나는 대로 지역으로 넓히자는 단계적 구상이다.
넷째, 사망진단서·검안서의 품질을 관리한다. ‘심박정지’ 같은 모호한 기재는 통계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작성 교육, 기관·지역별 불명확 사인 비율 공개, 사후 환류가 필요하다. 부산·울산의 사례가 보여 주듯 효과는 짧은 기간에도 확인된다.
중기: 법과 구조를 바꾸는 것
다섯째, 법의관 자격과 직무의 법정화. 폐기된 2023년 법안은 훌륭한 출발점이다. 병리 전문의 등으로 자격을 한정하고, 직무 독립성을 보장하며, 양성기관 지정과 국비 지원 근거를 만드는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다. 입법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기관 간 이견이므로, 서중석 전 원장의 제안대로 우선 양성 중심으로 합의하고 검시 주도권 문제는 단계적으로 풀어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섯째, 처우와 경력 경로를 새로 설계한다. 5급 전문관 틀로는 12~15년 수련을 마친 전문의를 붙잡기 어렵다. 의사 보수 체계에 맞는 별도 직급이나 수당, 감정서 작성 보상, 대학·국과수·민간을 오가는 순환 구조(양경부 국과수 법의학부장이 제안한 방식)가 필요하다. 지방 근무에 대한 보상도 포함돼야 한다.
일곱째, 사망 정보의 전산 연계와 선별 자동화. 앞서 만난 법의인정의가 말한 ‘자동 절차’는 여기에 가까울 것이다. 병원의 전자 사망진단서, 119·경찰 출동 기록, 사망신고 정보를 연계해 자연사로 명백한 사건은 신속히 처리하고, 의심 신호가 있는 사건만 자동으로 법의 전문가에게 넘기는 선별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망 장소가 병원 밖이고, 의무기록상 직전 진료가 없고, 사인이 모호하거나 연령·시간대가 특이한 경우 등을 기준으로 알림이 가도록 설계할 수 있다. 법의관이 현장에 가지 않고도 사진·영상과 기록을 원격으로 검토하는 방식도 인력 부족을 덜어 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망자 정보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상 특례 규정과 접근 통제 장치가 반드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
장기: 체계를 완성하는 것
여덟째, 전담 검시 체계로 전환. 겸임·위촉에서 거점별 전담 검시 체계로 옮겨 가야 한다. 인구 규모에 맞는 법의관 배치 기준을 정하고, 미국 쿡카운티 사례처럼 법의관에게 기록 열람과 추가 수사 요청 권한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아홉째, 부검·검시 데이터의 등록과 활용. 한국에는 전국 부검 등록 체계가 없어서 연구자들이 기관 자료를 모아 추산해야 한다. 데이터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 사인 통계와 연결하고, 아동 사망 심층분석처럼 올해 8월 시행된 제도에서 부검 정보를 단계적으로 공유하는 체계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
반론도 짚어야 한다
개선 방향을 논할 때 따져야 할 반론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부검률을 무조건 높이는 것이 정답인가. 김장한 회장은 부검률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 부검률이 한 나라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재는 공정한 잣대가 아니며 오히려 검안의 정확도를 높여 불필요한 부검을 줄이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부검은 비용과 유족의 심리적 부담이 큰 만큼, 목표는 부검의 양이 아니라 사인 판단의 질이어야 한다.
둘째, 사법 통제와 의학 전문성의 균형. 검시 주체를 누구로 하느냐는 수사 권한과 직결된다. 법의관의 독립성은 지키되 수사기관과의 협력 틀을 어떻게 짤지는 입법 과정에서 풀어야 한다.
셋째, 자동화의 위험. 선별 자동화는 오분류가 생기면 중요한 사건을 놓칠 수 있다. 알고리즘은 어디까지나 전문가에게 사건을 넘기는 보조 역할이어야 하고, 최종 판단은 자격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오류 발생 시 책임 소재와 사후 검증 절차도 설계에 포함해야 한다.
넷째, 비용. 공공 시설과 인력 확충에는 예산이 든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은 보험·보상 분쟁을 줄이고 유족의 가족력 확인에 도움이 되며(유성호 교수), 사고·감염병·약물 사고 등의 조기 경보 기능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편익이 크다.
죽음을 정확히 기록하는 사회
사인 규명은 억울한 죽음을 막고, 보험·보상 분쟁을 줄이고, 공중보건 위험을 일찍 포착하는 사회적 장치다. 한 사람의 마지막 기록이 부정확하면 그 비용은 유족과 사회가 나눠 진다.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는 시대에 전문인력을 일일이 불러 해결하는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
법의인정의가 현장에서 먼저 느낀 한계는 한 개인이나 기관의 의지로 풀 수 없는 문제다. 자격을 정하고, 사람을 키우고, 정보가 흐르게 하고, 판단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 일은 결국 국가의 몫이다. 폐기된 법안을 다시 꺼내 놓는 것에서 출발해도 늦지 않다. 죽음을 정확히 기록하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