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노벨화학상 소아이 겐소 교수, '스스로 복제하는 분자'로 생명의 비밀에 다가서다
2026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 도쿄이과대 명예교수 소아이 겐소(硤合憲三). 작은 쏠림을 스스로 증폭시키는 '소아이 반응'의 의미와 그의 연구 인생, 일본 노벨상 계보를 상세히 짚어본다.
2026년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일본의 소아이 겐소(硤合憲三·76) 도쿄이과대 명예교수와 프랑스의 앙리 카강(Henri B. Kagan) 파리쉬드대 명예교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7일(현지시간) 두 사람을 ‘비대칭 유기합성에서의 비선형 효과와 자기촉매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상금 1,200만 스웨덴 크로나는 두 사람이 반씩 나눈다. 일본은 지난해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특별교수에 이어 2년 연속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거울에 비친 손처럼, ‘키랄성’이란
소아이 교수의 업적을 이해하려면 먼저 ‘키랄성(chirality)’을 알아야 한다. 왼손과 오른손은 모양이 같지만 포개지지 않는다. 분자 중에도 이처럼 서로 거울에 비춘 모습인 쌍둥이가 있다. 화학식은 같아도 3차원 구조가 거울상인 이 한 쌍을 ‘거울상 이성질체’라 한다.
문제는 이 쌍둥이의 성질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쪽은 약으로 작용하고 다른 쪽은 효과가 없거나 해로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약 개발에서는 원하는 한쪽 손만 골라 만드는 ‘비대칭 합성’이 핵심 기술로 꼽힌다. 노벨위원회는 이번 수상 업적이 “의약품 제조 반응을 설계하는 화학자들에게 결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더 큰 수수께끼도 있다. 자연의 생명체는 거의 한쪽 손 분자만 사용한다.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은 대부분 왼손형이고, DNA를 이루는 당은 오른손형이다. 이를 ‘호모키랄성’이라 한다. 지구상 생명은 왜 한쪽 손만 택했을까. 이는 생명의 기원을 둘러싼 100년 넘은 질문이다. 노벨화학위원회의 하이너 린케 위원장은 두 수상자가 “한 세기 넘게 이어진 화학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를 줬다”며 이들의 반응을 “장관(spectacular)”이라고 표현했다.
소아이 반응: 제품이 스스로 촉매가 되는 반응
소아이 교수가 1995년 발견한 ‘소아이 반응(Soai reaction)’은 세계 최초로 확인된 비대칭 자기촉매 반응이다. 반응의 핵심은 생성물 자신이 촉매가 되어 같은 생성물을 더 많이 만든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오른손형과 왼손형이 똑같이 섞인 구슬 상자에서, 어느 한 색 구슬이 아주 조금 더 많이 나왔다고 하자. 그 구슬이 자신과 같은 색 구슬을 더 빨리 만들어 내는 규칙이 있다면, 반응이 반복될수록 한쪽 색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시작은 미세한 쏠림이지만 결과는 거의 한쪽 구슬뿐인 상태가 된다.
실제 실험에서는 더 극적이었다. 소아이 반응에서는 오른손형과 왼손형의 차이가 0.00005%에 불과한 상태에서 출발해, 세 차례 반응을 거치자 한쪽 손 분자의 순도가 99.5% 이상으로 올라갔다. 이 반응에는 피리미딘 알데히드에 디이소프로필아연을 붙이는 반응이 쓰였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반응의 방향이 우연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한쪽 손을 정해 주지 않아도 초기의 사소한 차이만으로 어느 한쪽이 우세해지는데, 어느 쪽이 이길지는 우연에 따라 달라졌다. 한 보도에 따르면 실험 37회 중 18회는 한쪽이, 19회는 다른 쪽이 우세했다.
이는 영국 물리학자 프레더릭 찰스 프랭크가 1953년 이론으로만 제시했던 모델을 실험실에서 구현한 것이다. 아주 작은 불균형이 스스로 증폭되어 한쪽 손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인 셈이다. 도쿄이과대는 이 연구가 “생명을 이루는 분자가 왜 한쪽 손 구조를 띠는가”라는 생명 기원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소아이 반응 자체가 지구 생명의 기원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가능한 메커니즘을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공동 수상자 카강의 ‘비선형 효과’
공동 수상자 카강 교수는 1986년 이른바 ‘비선형 효과’를 발견했다. 그전까지 화학자들은 촉매의 순도가 이를 만드는 재료(리간드)의 순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강은 순도가 낮은 재료로 만든 촉매가 오히려 더 순도 높은 생성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였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금속 하나에 리간드가 여러 개 붙을 수 있어서, 섞인 재료로 촉매를 만들면 같은 손끼리 짝지은 촉매와 서로 다른 손끼리 짝지은 촉매가 함께 생긴다. 다른 손끼리 짝지은 촉매의 활성이 낮다면 같은 손끼리 짝지은 촉매가 반응을 주도해, 결과물이 재료보다 더 순수해진다. 소아이의 자기촉매 반응은 이 ‘증폭’ 개념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소아이 겐소는 누구인가
성장과 학업: 소아이 교수는 1950년 5월 3일 히로시마현 아키군 후추초에서 태어났다. 히로시마대 부속고를 졸업하고 1974년 도쿄대 이학부 화학과를 나왔다. 1979년 도쿄대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도교수는 유기합성 분야의 거장 무카이야마 미쓰히로였다.
연구 이력: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일본학술진흥회 연구원을 거쳐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1981년 도쿄이과대 이학부 응용화학과 강사로 부임해 1986년 부교수, 1991년 정교수가 됐다. 이후 40년 넘게 한 대학에서 연구하며 비대칭 합성과 키랄성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었다. 프랑스 ESPCI 파리, 규슈대, 와세다대, 스트라스부르대, 중국 지린대 등에서 객원교수로도 활동했다.
수상 경력: 노벨상 이전에도 학계의 인정은 꾸준했다. 2000년 이노우에 학술상과 일본화학회 학술상, 2005년 이탈리아화학회의 키랄리티 메달, 2007년 문부과학대신 표창 과학기술상, 2011년 일본화학회상, 2012년 자수포장(紫綬褒章), 2016년 도레이 과학기술상, 2023년 노요리상, 2025년 일본학사원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 소아이 교수는 7일 도쿄이과대 가구라자카 캠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카강 교수와 함께 이 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하며, 이번 수상이 유기합성화학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노벨상 계보 속 소아이
소아이 교수의 수상으로 일본(외국 국적 취득자 3명 포함)의 노벨상 수상자는 31명, 자연과학 분야 수상자는 28명이 됐다. 화학상만 놓고 보면 10번째다. 분야별로는 물리학 12명, 화학 10명, 의학·생리학 6명, 문학 2명, 평화 1명이다. 일본의 첫 노벨상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의 물리학상이었다. 그의 수상은 도쿄대 출신 화학상 수상자로는 10번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 일본 언론은 지난해 앞서나간 교토대와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일본 학계는 장기간 한 연구 주제를 파고드는 기초과학 연구 문화의 성과로 이번 수상을 평가하고 있다. 소아이 반응의 발견은 1995년으로, 수상까지 30년 넘게 걸렸다.
정리
소아이 교수의 연구는 ‘아주 작은 쏠림도 스스로 증폭되면 거대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이는 의약품과 향료, 농약처럼 한쪽 손 분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활용되는 비대칭 합성 이론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생명이 왜 한쪽 손만 택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