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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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울 ③ 나 자신과의 싸움, 그 마음을 알아차리다

자책과 남 탓 사이를 오가는 마음의 롤러코스터, 그 밑바닥에 숨은 상처받은 나를 바라보는 심리 칼럼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과 싸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오래,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대는 의외로 자기 자신일 때가 많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그 상처를 곱씹다가 스스로를 탓한다. 그러다 견디기 힘들어지면 이번에는 상대방을 원망한다.

“내가 왜 이렇게 부족하지?” “저 사람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이처럼 자책과 남 탓 사이를 오가는 마음의 롤러코스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경험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작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는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친구의 한마디에 무너진 A씨

A씨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앞두고 옷장을 열었다.

예전보다 조금 불어난 체형과 거울에 비친 얼굴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이제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애써 마음을 다잡고 모임에 나갔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구석에 앉았다.

그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어? 너 눈 밑에 주름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네.”

친구에게는 별다른 악의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A씨의 마음에는 그 한마디가 깊숙이 꽂혔다.

‘내가 관리를 못 하는 사람처럼 보였겠지?’ ‘역시 내 모습이 우스워 보였을 거야.’

자신의 외모를 탓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니,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 대신 얼굴 평가부터 하네.’ ‘저 친구는 예의가 왜 저렇게 없어?’

이번에는 친구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나를 탓하다가,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상대를 탓하는 것이다.

A씨의 마음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를 찌르는 화살과 남을 향하는 화살

A씨를 힘들게 한 것은 친구의 말 한마디만은 아니었다.

그 말이 건드린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쩌면 이런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고 볼품없어지면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친구의 말이 무례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하는 행동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나는 이 말에 이렇게 크게 흔들렸을까?”

바로 이 질문에서 ‘알아차림’이 시작된다.

상대방의 말과 나의 마음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무례함은 상대방의 몫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내 안에서 일어난 수치심, 열등감, 분노, 두려움은 내가 돌봐야 할 마음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상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의 주도권을 내어주게 된다.

자책과 남 탓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흥미로운 것은 자책과 남 탓이 전혀 다른 반응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자책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남 탓은 이렇게 말한다.

“전부 저 사람 때문이야.”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상처받은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운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내가 나를 공격하다가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지면 상대를 공격한다.

상대를 원망하다가도 다시 ‘내가 뭔가 부족했나?’ 하고 자신을 탓한다.

이렇게 마음은 끊임없이 화살의 방향을 바꾼다.

중요한 것은 그 화살을 누구에게 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화살 자체를 내려놓는 것이다.

“저 사람 때문에 힘들다”에서 한 걸음 더

알아차림은 아주 작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났다면 즉시 판단하지 않고 잠시 멈춰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지?”

화가 났다면 ‘화가 났구나’ 하고 바라본다.

억울하다면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구나’ 하고 바라본다.

부끄럽다면 ‘부끄러움이 느껴지는구나’ 하고 바라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해본다.

“저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일까, 아니면 저 사람의 말이 내 안의 어떤 상처를 건드린 것일까?”

이 질문은 상대방의 잘못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빼앗겼던 내 마음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질문이다.

나를 공격하던 나도, 화를 내던 나도

그렇다면 알아차린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나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 “왜 이렇게 예민하지?”

라고 다시 자신을 공격한다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자.

“많이 속상했구나.” “그 말이 내게는 아팠구나.” “나는 아직 내 모습의 변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구나.”

자신의 약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을 또다시 비난할 필요는 없다.

상처받은 나도 나이고, 화를 내는 나도 나이며, 때로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나 역시 나다.

그 모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던 두 사람이 조금씩 화해하기 시작한다.

세월의 흔적도 나의 일부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자연스러운 변화를 ‘부족함’으로 받아들인다.

젊음이 아름답고 늙음은 초라하다는 사회적 기준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름 하나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다.

웃었던 시간도 있고, 울었던 시간도 있다. 가족을 위해 애쓴 날도 있었고,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온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름은 없애야 할 흔적이기 전에 살아온 시간의 기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이다.

알아차림은 나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알아차림을 ‘나를 고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쩌면 알아차림은 나를 고치기 전에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깝다.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상처받는 나를 보고, 질투하는 나를 보고, 두려워하는 나를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판단하지 않는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그저 본다.

거울은 얼굴에 주름이 있다고 해서 나무라지 않는다.

그저 있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마음의 거울도 마찬가지다.

내 안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올라오는지를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다.

마음의 주도권을 다시 나에게

오늘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면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는 데서 잠시 멈춰보자.

그 사람이 잘못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과 별개로 내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무엇이 건드려졌을까?” “나는 지금 나를 탓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를 탓하고 있는가?”

그리고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자.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말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 말을 붙잡고 계속 괴로워하는 것은 지금의 나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제 그 마음을 놓아줄 수도 있다.

상대의 무례함은 상대의 몫으로 돌려주고, 내 마음은 내가 돌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주권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거창한 명상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내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오늘도 그 작은 멈춤 하나로 충분하다.


다음 칼럼 예고

「나는 왜 늘 비슷한 사람에게 상처받는가 —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패턴을 알아차리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가 직장, 가족, 친구, 부부관계에서 반복해서 경험하는 ‘이상하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패턴을 살펴본다.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반복하는 반응의 패턴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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